[기고] “묵묵부답[默默不答]의 시장님! 한 말씀만 하세요”

당현증 … 前부천시의회의원

| 입력 : 2021/12/04 [10:49]

지난 1주일 간 부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평균 확진자 숫자이다. 지난해 부천에서는 한 요양병원에서 코호트 격리로 일거에 수십 명이 세상을 달리하는 불행한 사건으로 뉴스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아픈 기억이 생생하다. 위드 코로나 상황에서 급증하고 있는 확진자에 대해 부천시는 과연 어떤 대책이나 조치가 있는지, 있기나 한 것인지 매우 궁금하고, 불안을 넘어 두렵다.

어느 공개 석상에서, 장덕천 부천시장은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가 부천시는 하위 수준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지난 1128일 경기도감염병관리지원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천은 10월 마지막 주부터 30.5, 47.5, 47.8, 60.110만명 당 발생율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부천시 확진자 발생 연령층도 40대 이하가 절반을 차지한다. 학교도 위드 코로나와 함께 전면 등교로 바뀌면서 확진자 발생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중앙방역본부나 대통령은 돌아간 일상을 되돌려 단계를 강화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계절도 역병이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겨울이다. 12월은 연말과 연시의 교량적 한 기간이라 모임과 행사가 많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11월 한달 간 부천은 10월보다 1천명이 넘게 확진자수가 증가했다. 1130122, 121118명이 추가됐다. 하지만 부천시와 부천시장은 묵묵부답[默默不答]이다. 역병의 창궐이 자연적 재앙이 아니라면, 시민이 묻고 시장이 답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물론 국가적으로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지만, 그렇다면 정부나 시장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어지는 것은 필자만의 망상일까. 능력의 한계일까, 부재일까. 무관심이나 도외시일까. 무시나 경시일까. 아니라면 이 모두라는 것일까. 생명의 경각에도 한마디 말이나 행동이 없다.

불우한 환경에서 사랑과 온정을 나누는 일은, 보람과 가치는 물론 인간적 교감을 나눌 수 있어 연말 행사는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역병은 생명의 존재유무를 가름하는 결정적 행위이다. 연말이라서 행사가 많다. 시장과 정객[政客]들의 출몰이 얼굴내기에 분주하다. 시장이 중심인 단체의 행사가 유별나게 많은 것은 인정하나, 지금의 부천시 역병의 발생 추이를 살펴보면, 시장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은 나만의 애끈한 어려움일까.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상상으로 또 불편해진다.

나쁜 자[의 마음은]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보통 사람은 잘못을 알기만 하며, 현명한 사람은 잘못을 고치고, 성인은 잘못을 적게 범한다.(악인지심무과 惡人之心無過, 상인지심지과 常人之心知過, 현인지심개과 賢人之心改過, 성인지심과과 聖人之心寡過). [안원(顔元) 안습재선생언행록(顔習齋先生言行錄)중에서] 이런 비유가 적절하지 않더라도 자꾸 떠오르는 것이 한없이 불편하다.

지금쯤 시장이라면 시민을 향한 위로와 협조를 위한 단 한 번의 외침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객들이 거리에 내거는 구호와 외침에는 가차 없이 철거하는 속도를 행하고, 생사를 가름하는 역병에는 묵묵[黙黙]이 두텁고, 한 마디 말이 없다. 그래도 역병으로 인한 죽음으로의 시민의 질주에는 한 마디 외침은 필요할 터인데. 그저 공포의 확진자 숫자만 일러주는 보도기사와 다를 바 없는 시장의 행태에 화가 치미는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바이러스의 변형과 강도[强度]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인간을 향한 인과응보는 아닐까. 자연의 이법에 대한 무모한 도전에 대한 천벌로서의 엄벌과 채찍은 아닐까. 역병은 늘 냉정한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고, 지대한 관찰을 요구하는 자연현상일 터인데. 흩어지고 경쟁하고 갈등과 분열에 대한 엄중한 경고는 또 아닐까. 이웃을 돌아보고 보듬고 나눔을 암시하는 사전 경고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격몽[擊蒙]이고 그에 대한 요결[要訣]로서의 역병이라면 해결은, 우리 안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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